할아버지는 늘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셨다. 이동하실 때에는 라디오 줄을 길게 늘려 목에 걸어 라디오가 명치쯤 내려오게 달랑달랑 다니셨고, 들일을 하실 때에는 한 켠에 라디오를 놓아 두고 볼륨을 키워 일하시는 내내 틀어 놓으셨다. 사실 라디오는 할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신 때부터 저녁에 방으로 들어와 자바라 텔레비전을 켜기 전까지 늘 틀어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던 라디오는 꼭 이렇게 생겼다. 물론 60년대 아리랑 라디오는 아니지만 생김은 같다. 벽돌만큼 투박한 생김새를 가죽 케이스로 가렸는데, 매일 같이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으시니 저렇게 조그만 배터리가 아닌 라디오만한 대형 배터리를 물려서 정말로 부피가 벽돌 한 장 보다 큰 라디오를 그렇게 애지중지 목에 걸고 다니셨다. 아버지께서 소형 라디오를 사주신 적도 있는데 며칠을 못 가 꼭 가죽케이스에 담긴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리랑 라디오 세대인 할아버지께는 디자인이 곧 지난했던 세월의 흔적이고 그 만큼 아련한 추억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낮은 라디오가 밤은 자바라 문 안의 텔레비전이 함께했다. 늘 엄하고 고집불통 불퉁불퉁한 성격 탓에 우리 가족보다 수다쟁이 라디오가 허풍쟁이 텔레비전이 할아버지 품 안에 들 수 있었다. 둘은 이해를 구하지도 상처 받지도 않는다. 켜면 침묵을 삼켜주고 끄면 침묵을 돌려 줄 뿐이다. 날을 세운 시사 방송도 구구절절한 사연의 방송도, 걸죽하거나 투명한 음악 방송도 모두 할아버지의 벗이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부엌의 가스렌지 아래 오른쪽 서랍을 열면 늘 분말 분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학교를 다니실 때 탈지분유를 배급 받곤 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분유였지 싶다. 다 큰 어른인 할아버지께서는 그 또한 추억인지 우유 대용인지 하루 일과처럼 따뜻한 물에 타 드셨다. 그런데 이게 물에 타지 않고 한 숟갈 입 안에 털어 넣고 녹여 먹으면 조금 짭조름하면서 달달하니 꿀맛이었다. 할아버지의 라디오를 떠올리다보니 문득 그 분유 맛이 입 안의 침샘을 자극하는 것 같다. 아셨을 게다, 할아버지는, 손주의 도적질을. 할아버지, 우리는 분유를 나눠 먹는 사이였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밤길,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자기 얼굴을 환하게 비추며 걷는다. 할아버지의 라디오가 떠오른다.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어야 될까?”라고 묻는다면 왠지 정의의 여신이 떠오른다. 엄숙한 당위의 무게. 반면, “미디어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혹은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먼저 떠오르는 심상을 언어로 풀어내면, 가벼운 바람같은 미디어다. 기술의 발전은 이를 1인 미디어라는 형태로 가능하게 하고 있다. 

1인 미디어란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송출하는 것이다. 텍스트에 머물러 있던 1인 미디어는 인터넷 속도 발전과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비롯한 IT 기기의 가격 하락과 성능 향상으로 영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쉽게 영상을 찍고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초기에는 UCC에 관심이 몰렸다. 호기심, 신기함, 재미가 맞물렸고 유사성, 동질성을 참 중요하게 여기는 반도다보니 UCC 영상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거친 파도 같았던 UCC 열풍은 쉬이 포말로 흩어졌다. 이유는 간명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배고픈 고래의 배를 불려 주지는 않는다. 

UCC가 유행했던 당시에는 UCC는 놀이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UCC가 범람했던 당시에도 ‘별풍선’이 있고 광고 수익 쉐어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그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가 많아진 것은 기반이 되는 뒷단의 통신기술, 온라인 결제 수단과 광고 기술, 대용량 파일 처리 기술, 소셜미디어 등이 복합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의 기반은 인터넷이다. 2000년도에도 인터넷 방송은 있었다. 제임스딘으로 히트를 친 주병진 씨가 세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이 그 해 4월에 개국했었다.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그의 지인들인 이경실, 이성미, 박미선, 이홍렬을 비롯 황봉알, 김구라 등의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 지상파에서는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인터넷 방송을 만들어 독자적인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00년이면, 겨우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서 벗어나던 때라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이들은 작은 이미지도 최적화를 위해 열대여섯 조각으로 잘라서 올리던 때다. 그런 때에 독자적인 인터넷 방송 서비스라니, 방향은 옳았지만 시기가 앞섰고 일찍 접어 빛을 보지 못했다. 

2002년에 세이클럽 라디오 방송이 나오고, 어쩌면 세계 최초라는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판도라TV가 2004년에 나오면서 영상 공유가 차츰 일상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2006년에는 아프리카TV가 개국하고, 같은 해 10월 구글은 유튜브를 16억 5천 달러에 인수했다. 하지만 서비스 초기에는 방송 진행자(BJ, Streamer)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유튜브에서 구글의 애드센스를 확대해 영상에 광고를 넣기 시작한 건 2007년 10월 경이고, 아프리카TV에서 별풍선을 도입한 건 그해 11월경이다. 이렇게 수익화의 길이 열리면서 영상 부문에서도 전업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프리카TV의 크리에이터, BJ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연 1억에 이어 곧 월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BJ가 나오게 되었고, 곧 이들을 묶어 연예기획사처럼 관리해주는 MCN(Multi-Channel Network) 사업자들이 등장한다. (MCN은 유튜브 내에서 사용하던 명칭으로 유튜브 밖을 벗어나면 MPN(Multi-Platform Network)이라 사용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MCN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인 크리에이터가 아프리카TV의 BJ로 대변되고 있어 별풍선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선입견이 강한데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MCN의 산업 규모는 이미 놀라운 수준이다. 월트디즈니, 드림웍스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수조원을 1인 미디어와 창작자를 육성하는 다중 채널 네트워크에 투자했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몇 가지 수치만으로도 가늠이 가능할 것 같다. 지난 달 발행된 이은영 님의 <MCN 백만 공유 콘텐츠의 비밀>  중 일부를 발췌했다. 

– 메이커스튜디오에는 6만여 명의 소속 크리에이터가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 운영 채널이 5만 5천 개가 넘는다. 이 시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메이커셀렉트라는 자체 광고 솔루션을 15년에 론칭했다.
– 자신과의 대화를 1인 다역으로 진행하는 중국의 크리에이터 파피장은 올 4월 자신의 방송에 붙일 광고를 경매에 부쳤는데 7분만에 무려 2200만 위안에 상하이의 화장품 기업인 리런리장에 낙찰됐다고 한다. 벤처캐피털사들은 파피장에 1200만 위안 한화로 약 20억 원을 투자했다. 인터넷 상의 유명인을 일컫는 왕뤄홍런을 줄여 왕홍이라 한다. 중국은 왕홍경제라는 말이 생겨났다.
– 2016년 3월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오사카 소재 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대상의 장래희망 설문 조사 내용이 기사화됐는데, 3위가 유튜버였다. 1위는 축구선수, 2위 의사, 4위 공무원.
– 일본의 탑 크리에이터인 히카킨의 추정 연수입은 약 2억엔이다. 2위는 엽기실험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하지메사쵸로 추정 수입은 1억 6600만 엔이다. 이 둘은 움(UUUM) 소속이다.
– 글로벌 크리에이터. 2015년 유튜브 수입 기준. 게임 전문 크리에이터 퓨디파이(PewDiePie)는 1200만 달러, 패러디 전문 스모쉬(Smosh) 15년 수입 850만 달러, 리액트 시리즈로 유명한 파인 브라더스(Fine Brothers) 850만 달러, 린지 스털링(Lindsey Stirling) 600만 달러, 게임 전문 KSI450만 달러, 메이크업 전문 미셸 판(Michelle Phan) 300만 달러.
– 국내 크리에이터들도 연수입이 10억을 넘어가는 게임 크리에이터인 양띵은 174만, 게임 방송을 하는 대도서관은 10월 현재 129만명, 뷰티 크리에이터인 씬님의 구독자는 110만 명, 키즈 영상 전문 캐리와장난감친구들 115만, 여캠 김이브 102만, 먹방 밴쯔 99만, 병맛 영상을 주로 올리는 쿠쿠크루 68만, 영어교육 디바제시카 64만, 더빙전문 유준호 48만 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처럼, 1인 크리에이터들이 고수익을 내는 분야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게임, 뷰티, 먹방, 언박싱과 같은 유아 프로그램에 고수익 크리에이터들이 몰려있다. 예전 같으면 전파가 아깝다했을 소재들일 수 있는데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방송 포맷이다. 방송의 주 시청자는 역시 ‘전파가 아깝다’는 표현이 낯설 밀레니얼 세대다. 온라인 플랫폼의 크리에이터들은 그 인기에 힘입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벗어나 레거시 미디어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도 하고, 오픈마켓이나 특정 브랜드와 연계해 자신의 방송에서 상품을 팔아치우기도 하며, MCN과 함께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엄마는 엄마 TV 보세요.” 요즘 세대의 TV는 타블렛이나 스마트폰 등의 모바일 기기다. 유선방송이 아닌 무선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상을 즐기는 코드 커터Cord cutter인 그들은 말을 건네면 반응해 주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방송에 더욱 공감과 위로를 느끼며, 빠르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특징이다. 카메라는 갈수록 작아지고 라이브는 일상이 되었다. 360도 촬영을 넘어 드론으로 스트리밍 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들은 원한다면, 일상이 On Air다. 그러니 혼자 잠자는 모습을 라이브로 방송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세대다. 무정형의 미디어 시대다. 

밀레니얼 세대의 41%가 코드커터라고 하는데, 미국의 경우이긴 하나 이는 당장 광고 시장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집행하는 광고가 TV를 능가하는 시대로 만들어 놓았다. 광고 시장 역시 불특정 다수를 향해 TV 광고를 틀던 시대에서 온라인에서 타겟 광고로 중심이 이동했다. 국내 지상파의 광고점유율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세에 있다. MBC는 광고 매출 실적이 전년대비 700억 이상 감소할 것을 예상해 10월부터 긴축 경영 강화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런 변혁에도 레거시 미디어의 언론 기능을 대체하기는 쉽지가 않다. 언론은 어쩌면 가장 자본집약적인 미디어 장르일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혹은 소수의 집단이 기존 매스미디어처럼 글로벌하게 취재를 하고 지난하게 여러 단계의 게이트 키핑 과정을 거치고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구독자를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매스미디어에서 1차적으로 생산된 ‘뉴스’에 의견을 더해 재가공하는 시사방송을 하는 1인 미디어는 다수지만, 직접 취재를 해서 사실을 캐내고 논조를 밝히는 미디어는 적다. 그럼에도 한국의 저널리즘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하는 엑셀러레이터도 생겨나고, 기존 저널리즘의 전달 문법을 벗어나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 문법에 맞춘 닷스페이스나 알트 같은 작은 미디어 집단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초인이 될 수 없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로 쓸쓸하다. 그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구호보다 일상의 작은 공감과 위안이 먼저다. 1인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콘텐츠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이해한다. 무익한지 아닌지는 참여하는, 시청하는 이들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일상의 무게에도 누군가는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할테고 그들과 함께 말문을 트고 머리를 맞대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양상에도 둘 모두에 열려 있고 싶은 욕심이 여기에 있다. 

“미디어는 몇몇 자본이나 소수의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미디어센터도 센터별로 그 성향과 지향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공유하는 믿음이 있다면, 아마도 이 문장에 집약되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한 마디가 이 바닥에서는 공리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미디어 분화가 촉발되었다. 1인 미디어 혹은 소자본 미디어가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의해 조금 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의 영상 문화가 펼쳐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또 그 기대만큼 미디어센터에서 1인 미디어, 1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지원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야 됨을 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1인 미디어이고, 크리에이터라면 미디어센터는 MCN으로서의 몫 또한 고민해야 될 것이다. 그것이 마을미디어로 묶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의 다중 채널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군에서 2차 정기휴가를 나와 진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을 스쳐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직감을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다음 날 검지와 중지를 모아 할아버지 인중 밑에 대고 호흡을 확인해야만 했다.

며칠 뒤 할아버지 무덤에, 라디오를 올려 드렸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