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강구안 골목 73걸음여행연구소였다. ‘서피랑’으로 검색 중 알게 된 분을 만나 볼 요량으로 통영에 내려갔다. 73걸음에 들어가 여차해서 왔다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한 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개성 강한 연구소 내부 장식과 창 너머 강구안 골목에 무심한 눈길을 뿌리며 생각했다. 여긴 동피랑인가? 서피랑인가?

잠시 뒤 예의 개량 한복 차림의 장원쌤이 인사를 하시며 들어 왔고 안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앉고 보니 그냥 손님인 줄 알았던 분은 온나의 대표이신 똑소리나는 미연쌤이었고, 그냥 무뚝뚝한 사장님인 줄 알았던 분은 의외로 다정하고 우직한 우현쌤이었다. 명함과 인사말을 건넨 뒤 우리동네TV교실 사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왜 서피랑을 선택했는지와 함께. 조금은 판촉사원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더 서피랑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들이라 한 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참여의사를 확인한 뒤 함께하실 분이 더 있어야 된다는 부탁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주 뒤 73걸음여행연구소에서 모였다. 통카롱을 운영하시는 은영쌤과 현주쌤, 커피마마를 운영하시는 형범쌤, 우크렐레 강사이신 근혜쌤과 멸치이야기라는 건어물 쇼핑몰을 운영하시는 현아쌤까지 8분과 함께였다. 장원쌤의 수고 덕분이다. 다시 한 번 CJ헬로비전 우리동네TV교실 사업과 일정에 대해 소개를 하고 참석하신 분들과 일정을 조율했다.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좋은 분들과 뜻 있는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설레임이 큰 만남이었다. 이름처럼 맛있는 진미식당에서 함께한 점심은 보너스.

 

 

다시 한 주 뒤 우리는 명정동주민센터 동장실에 모였다. 동장님의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다. 첫 시간에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던 포에티크의 우경쌤과 센터 간사이신 경화쌤도 함께했다. 동장님으로부터 서피랑 마을의 향토사와 개발 계획을 듣고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묻고, 아이디어를 건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때문에 2차시를 <우리지역 이해하기>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명정동주민센터 김용우 동장님의 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아마 보통 관, 공무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있을텐데 김용우 동장님은 3시간 여의 만남 동안 그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는, 언제나 예외는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분이었다. 동장실 책상 한 켠에 벗어 놓은 3켤레의 신발 중 장화를 보며 보통분은 아니겠구나 짐작은 했다. 걸출한 입담과 실행력, 무엇보다 서피랑 지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다.

아무래도 서피랑 홍보 영상 작업이다보니 동피랑과 끊임없이 견주어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소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방향을 찾기 위해 동피랑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뿐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인데, 세병관에서 동쪽에 있는 비랑은 ‘동피랑’으로, 서쪽에 있는 비랑은 ‘서피랑’으로 불린다. 동피랑은 익히 알려져 있듯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사람들이 기거하면서 만들어진 평범한 달동네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을 위해 마을 철거 계획을 발표한다. 물론 오갈데 없는 주민들은 반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에서 공공미술의 기치를 걸고 2007년 동피랑 벽화공모전을 열게 된다. 그 후 벽화가 입소문이 나면서 통영시는 철거 계획을 대폭 수정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세 채만 철거했다고 한다. 그렇게 동피랑은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반면 서피랑은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서피랑에는 1945년 해방 후 가정집 형태의 윤락가가 형성돼 통영의 수산업이 번성했던 1980년대까지 호황기를 누렸다고 한다.  한 때 300여 명의 윤락여성이 ‘야막골’이라 불렸던 서피랑 홍등가에서 종사했던 때도 있었다고하는데, 수산업 쇠퇴와 함께 퇴락했다고 한다. 2003년도까지 남아 있던 여성 한 명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성매매특별방지법이 시행된 건 2004년 9월인데 그 이전에 이미 야막골은 역사가 된 듯 하다.

그런 음울한 역사를 가진 서피랑이지만, 통제영에서 충렬사로 이어지는 유적지와 박경리, 김상옥 선생의 생가, 백석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란’에게 반해 통영을 몇 번이나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낮술을 하고 충렬사 계단에서 썼다는 <통영2>라는 시 등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너무나 풍부하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다듬고 알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피랑에 내재된 문화적 가치를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3차시는 은영쌤의 통카롱에서 진행했다. CJ헬로비전 우리동네TV교실 때문에 처음 통영을 찾은 날 서피랑 지역을 둘러보며 아직 레코드 가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 사진을 찍어 미디어센터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런데 그 때 미처보지 못한 게 있으니 그 레코드 가게 2층에 있는 통카롱이었다. 통영의 온화한 기후에도 쉽게 변질되지 않아 꿀빵은 오랫동안 군것질 거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고한다. 동피랑으로 가는 길목에 가장 많이 파는 품목도 꿀빵이다. 그런데 꿀빵은 요즘 세대 입 맛에 맞는 먹거리는 아닌 듯 통영 여행 후기에서 꿀빵을 맛있게 먹었다는 글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통카롱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마카롱에 통영의 상징성을 담는 작업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이루어 가고 있다.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거나 단 맛을 줄이고 크기는 키우는 등의 숨은 차별화 전략도 있다. 말이 긴 건, 교육을 떠나 이미 이 곳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차시는 통카롱의 두 쌤들이 준비해주신 빵과 마카롱, 커피를 먹어가며 촬영의 기초와 카메라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고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는 역시 미디어센터의 기둥 중곤쌤이 준비해서 처음 카메라와 캠코더를 사용해보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셨다. (착한 사람은 강의도 착하게 한다!) 이론 수업 후 실습은 3개조로 나누어 진행했다. 캐논 5D Mark 2를 이용한 인터뷰 촬영팀, 소니 핸디 캠코더를 이용한 서상옥 거리 촬영팀, 고프로를 이용해 중앙시장 소개 영상 촬영팀으로 각 팀이 돌아가며 세 개의 다른 장비를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DSLR을 이용해 인터뷰를 촬영하는 팀은 공통 질문이 세 개 주어졌다. 둘은 서피랑은 OOO이다와 어떤 영상을 찍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답변을 보면 함께 하시는 통영쌤들이 서피랑을 얼마나 아끼고 알리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형범 쌤

– 서피랑은 통영 여행의 베이스캠프다. 서피랑에서 통영 여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통영 여행을 계획하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장원 쌤

– 서피랑은 꿈동산이다. 여러 작가 선생님들이 예술가들이 꿈을 키웠던 곳이고, 우리가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 때문에 꿈동산이다.

– 서피랑의 무한한 테마에 깜짝 놀라고 있다. 볼매다. 통영관광일번지라는 주제로 서피랑에 오르면 통영이 보인다는 주제. 박경리, 윤이상, 김상옥, 유치환, 백석까지 아우르는 예향의 도시 통영이 서피랑과 함께 문화예술의 고향으로 다시 성장하는, 예향의 도시 시즌 2.

은영 쌤

– 서피랑은 살아 있는 숨쉬는 보물창고이다.

– 동물과 함께하는 서피랑. 모두가 같이 함께하는 서피랑.

우경 쌤

– 서피랑은 찬찬히 둘러보며 사색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곳.

현아 쌤

– 서피랑은 추억이다. (아이들이 놀러가는 것 자체를 어른들이 꺼려했다. 지금은 예쁘게 변하고 그런 부분이 없어졌다.)

– 아이들을 위주로 해서 찍으면 좋겠다. 어릴 때 명정동에서 많이 놀았는데, 그런 부분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99계단, 서피랑 언덕, 골목골목을 많이 누비고 다녔다. 그런 부분이 서민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었다. 그런 부분을 알려주고 싶다.

우현 쌤

– 서피랑은 통영의 보물창고다.

미연 쌤

– 서피랑은 사랑이다. 너무나 수많은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다. 잘못된 만남부터 안타까운 사랑까지. 찾아보면 엄청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거기 안에서 나와 닮은 사랑 이야기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사랑. 골목골목에 가로등 밑에 보면 되게 으슥한 곳도 많고 분위기 좋은 곳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걷고 싶은 길. 내가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 싶다. 걷는 길에서 느껴지는 시간을 담고 싶다.

다음주에는 서피랑 홍보 영상 제작을 위해 기획회의를 하고, 그 다음주부터는 촬영을 해야된다. 여간 고민이 아니다. 기획을 하는 것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도 모두 함께하시는 통영 쌤들의 몫이지만 한 발 앞서가야되는 조력자 입장에서는 그 못지 않게 고민된다. 3년 후의 서피랑의 모습이 10이라 했을 때 현재의 모습은 채 2라도 될까싶을 정도이다. 때문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영상으로 매력적인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해서 조금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겠다. 생계 때문에 누구보다 바쁘실 분들도 이렇게 애쓰시는데.

어쩌면 핵심요약 >>>

그간 서피랑에 다니면서 알게 된 곳. 나름 맛집과 멋집 추천. 글에도 나왔던 <진미식당> 여기 7,000원짜리 정식 끝내준다. 지금가면 귀한 시계꽃도 볼 수 있다. <서피랑 떡복기집> 떡볶이 국물이 끈적거리지 않고 너무 달지 않으면서 땡초 때문인지 매콤하면서도 깔끔하다. 3,000원. 물론 튀김과 함께 먹어야 비로소 떡볶이는 완성된다. <원조시락국> 서호시장에서 통영농협 쪽으로 나오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마솥에 끓인 장어국같은 시래깃국이 일품이다. 특히 식탁에 냉테이블을 넣어 반찬을 샐러드바처럼 떠 먹을 수 있게 해뒀는데 태어나 처음보는 광경이라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5,000원. <통카롱> 아, 여기 정말 좋다. 마카롱 좋아하시는 분들, 통영 왔다가 선물 사갈 만한 거 못 찾으신 분들 꼭 들려보시길, 강권. <73걸은여행연구소> 여기가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백석 기념 엽서와 책갈피가 있다. 소장님이 전직 자전거 선수셨던지라 자전거 대여 시 정말로 전문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곳의 모든 인테리어 역시 소장님 솜씨. 이곳에 파는 기념품들 역시 지역 사진가와 협업한 작품으로 ‘떼다 파는’ 물품이 아니다. 올 여름에는 진정한 백석 초판본을 독점 판매하게 된다고 한다.

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