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해 보여도 끊임없이 치열한 영화 ‘수성못’

민희경(민들레학교/진주시민미디어센터 인턴)

 

 

누구나 그런 것처럼, 희정은 아르바이트와 편입을 준비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열심히는 하지만 어디서 자꾸 짠 내가 나는 듯한 그런 삶. 그것도 모자라서 희정이 오리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성못에서 실종인지 자살인지 모를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원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 책임을 까딱하면 희정이 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 단 몇 분의 휴식에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가혹한 현실은 제발 살려달라는 희정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희정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현실이 어쩔 수 없이 익숙하고도 잔인하게 느껴질 것 같다.

정말 우울하고 어두운 소재의 이야기인데 신기하게도 영화는 생각보다 밝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가 쨍쨍한 밝은 날 본다 해도 여전히 공포영화는 무서운 것처럼, 분명히 밝은 느낌의 영화인데도 자꾸 침울한 기운의 안개가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귀신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진정한 공포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때로는 담담한 게 더 무섭고 더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영화가 딱 그렇다. 내면에 상처가 많은데, 겉으로 더 밝은 척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인 듯한 영목.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지내며 속으로 앓고만 있는 희정의 동생 희준. 다른 느낌이지만 둘 다 이 영화랑 잘 어울렸다. 영목은 외부에서 보면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알고 보면 열심히 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희준은 말 그대로 무기력했고 희망이 없어 보였다. 희정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 희준에게는 당연한 결과 였을지도 모른다.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별로 심하지 않은 말도 별로 심한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려는 희정과 열심히 죽으려는 영목. 그리고 그 가운데 무기력하게 존재를 들어내는 희준. 보통 영화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행복해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 영화는 현실 그 자체라서 그런지 그런 극적인 전개는 없었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래서 더 좋았다. 더 담백하고 솔직하게 가까이 와 닿았으니까.

 

영화 속에서 나오는 ‘현실적인 바쁨’이란 것들은 미성년자인 나에게는 아직 조금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왠지 자꾸 헛발질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과 누구나 한 번쯤은 우울해지고 죽고 싶어지는 때가 있고, 세상이 참 텁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 참 슬프게도 그런 막막한 부분들이 격하게 공감이 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자살이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공감도 못 할 것이고 별 감흥도 못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사는 게 간단하지 않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정말 사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커녕 생각도 안 해보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긴 하니까.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실 명확하게 ‘이런 것 때문에 힘들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정체 모를 불안감, 이유 모를 우울함. 물론 원인을 찾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나는 그 전에 ‘공감’과 ‘위로’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나왔던 ‘세상에 자기 얘기 들어주는 사람 딱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안 죽어요.’라는 대사처럼. 이 대사를 보고 찰스디킨스의 ‘당신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불안과 우울의 이유와 그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점점 개인주의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여유가 없고,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하나도 없어서 용기 내지 못하고 묻어두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정말 조금이라도 들어준다면 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희정에게는 가족도 있었고, 친구 비슷한 사람인 영목도 있긴 했다. 그러나 서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렇다고 적당한 온도는 아닌, 그저 미적지근하고 이상한 느낌이 드는. 딱 그 정도의 그런 관계. 마치 수성못 물의 온도가 그렇지 않았을까 괜히 궁금해졌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리배를 보고 오리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물밑에서 엄청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오리를 상징하는 오리배가 나왔던 건가 싶다. 오리배도 오리 만만치 않게 페달을 계속 밟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외면에 치열함뿐만 아니라 내면에 치열함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리배가 신경이 쓰였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힘들어 보였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다 힘들다는 게 이런 것이겠지. 모든 사람이 힘들어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 어색할 만큼. 다 각자의 아픔과 어려움을 끌어안고 산다. 대부분 모두가 그렇다. 그렇다면 서로를 존중해주기 위해서 ‘너만 힘든 거 아냐’라는 말 대신 ‘너도 힘들구나!’라는 말을 해준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