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을 만나다 #03 

<촉법소년> 김재현 감독

 

우리 곁에 있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인을 만나다> 3편에서는 제10회 진주같은영화제 지역섹션 상영작으로 선정됐던 <촉법소년>을 연출한 김재현 감독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햄버거를 사오다 마주친 영화 촬영 현장에 매혹되어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부터 촉법소년의 지난했던 촬영기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Q.영화를 언제 시작하셨나요.

20살 때 해운대에서 영화 촬영하는 걸 봤어요. 스텝들이 엄청 많이 뛰어 다니고 신기하더라고요. 연극영화과 다니는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연극영화과 새로 한 번 가 볼까? 군대 갔다와서 가라, 지금 뭐하러 가려고. 군대갈 날도 며칠 안 남았는데. 그래서 군대를 갔죠. 21살에. 군대에서 입시 준비를 했어요. 3년을 준비했어요. 계속 떨어졌죠. 2010년 3월에 서울예대 영화과를 갔죠. 벌써 7년 전이네요. 해운대에서 봤던 스텝들한테 물어 봤어요. 어떻게 하면 영화를 찍을 수 있는지. 그랬더니 선배 따라와서 왔다는 대답이 돌아 왔어요. 그래서 영화과를 가야지 영화를 찍을 수 있는거야하고 생각했죠. 혼자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 조차 못했어요. 그래서 일반인이 영화를 찍는 거 보면 신기해요. 저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

Q.한 순간에 매혹당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되신거군요.

그 광경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엄마랑 맥도널드 가서 햄버거 사오던 길이었거든요. “어, 신기하다. 저 머하노?” 그런 광경을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드라마 촬영이라든지, 영화 촬영이라든지 부산에서 흔하지 않잖아요. 정말 신기했어요.

Q.대학 들어가서는 영화를 많이 찍으셨나봐요. 단편을 7편 정도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스텝을 더 많이 했어요. 1년에 40편 정도 스텝을 했어요. 입학하자마자 매 주말마다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선배들 단편영화를 정말 많이 찍었어요.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밥만 했어요. 스텝들 식사비용을 아껴야 해서 맨날 밥을 다 해먹는거예요. 그래서 반 년 넘게 밥만 한 것 같아요. 아니면 힘 쓰는 일, 뭐 옮겨 달라고 하면 옮겨주고, 스타렉스에 실어서 가라하면 가고. 그런 걸 하면서 배워나갔어요. 수업 시간에 아무리 배워도 몰랐던 걸 현장에서 배우고 나니까 수업시간에 뭐라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1년 동안은 제가 뭘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방학 때도 계속 선배들과 다니면서 촬영하고.

Q.정말 하드트레이닝이네요. 그렇게 1년쯤 하면 조금은 보였겠네요.

네. 1년하고 나 혼자서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안 다니겠다 했어요. 배울 게 없다. 여기서. 나 혼자 배우겠다. 휴학했어요.

Q.그만 두고 영화 찍으셨어요?

혼자 영화 찍었어요. 혼자 연기하고. 혼자서 포커스 맞춰 놓고 찍어보고, 사람들 데려와서도 찍어보고. 그때부터는 독학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다른 학교 청강을 하러 다니기도 했어요. 다른 학교 심리학과 수업이나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면서 거의 1년을 그렇게 열심히 했죠. 제가 영화를 했던 기간 중 그때가 가장 열심히 했던 기간인 것 같아요. 혼자 재밌어서 찾아보기 시작한 게 그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만약 그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혼자서 찾아보지 못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졸업하고 똑 같이 포기했을 것 같아요.

Q.좋아서 진학하지만 빨리 접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1년 휴학하고 복학하신거에요?

2년 휴학했어요. 1년은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공장을 다녔어요. 자취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방배동에 있는 카드 우편물 본사가 있어요. 그 회사에 가서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 돌아가요. 밴딩해서 나르고 하는 일을 1년을 했어요. 그거는 가고 싶은 날만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청강을 안 듣는 날이나 누구 영화 도와주러 안 가는 날이면 항상 그거를 했어요. 항상 그거 해서 생활비 벌고. 그러고 나서 1년 휴학 더 하고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돈이 적게 벌려서 부산으로 내려와서 제가 예전에 같이 막노동하던 아저씨가 같이 하자고 해서 그 아저씨를 따라서 몇 개월 따라 다녔어요. 1월부터 5월까지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마트에 취직을 했어요. 취직을 해서 몇 달을 벌었어요. 이마트 다니며 그렇게 살다가 다음 학기에 복학을 해야되는데, 이제 돈은 벌었는데 졸업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될 것 같았어요. 그러다 겨울에 우연찮게 슈퍼에 갔는데 슈퍼 아저씨가 가짜 돈 가지고 고민하고 계셨어요. 그때가 10월이나 11월쯤 봤던 것 같아요. 생각을 하다 다음 해 1월부터 시나리오를 썼어요. 한달 반, 두 달 정도 쓰고, 학교 생활하고, 예전에 써놨던 사무라이 영화 시나리오가 있는데 그거를 2학년 때 찍고, 복학해서는 영화밖에 안 찍었던 것 같아요. 찍으려고 모아뒀던 걸 다 찍었던 것 같아요.

Q.휴학했던 기간 중 1년은 일 하시느라 영화를 많이 못 찍으셨겠어요.

쉬는 동안에는 한 편 찍고 못 찍었어요. 복학해서는 1년에 3편씩 찍었어요. 그때는 조금 하고 싶었던 생각이나 보여주고 싶었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전적이면서도 비용이 많이 안 드는. 그때는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아무나 같이 하자고 해서 조금 도와달라고 해서 찍을 수 있는 시기여서 더 많이 찍을 수 있었어요.

Q.그때도 필름으로 찍었나요?

그때는 필름으로 찍은 것도 있고, 디지털로 찍은 것도 있어요. 학교에서 필름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4분 영화다 그러면 필름으로 받을래, 돈을 받을래 이렇게. 필름으로 작업할 사람은 필름이 돈이잖아요. 그리고 현상 티켓줄게 이렇게 해요. 대신 디지털로 찍을 사람은 학교에서 카메라 대여해줄게 이렇게 해요. 돈이 똑같잖아요. 대부분 다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했는데 저는 필름을 선택한 거죠.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나올지 무섭다고 대부분 다 그랬는데 저는 기회가 없으니까 필름으로 하겠다, 남은 필름 다 쓰겠다 그랬죠.

Q.처음 필름 촬영은 언제 였나요?

1학년 때 시나리오를 내서 선정이 되면 연출을 할 수 있고, 선정이 안 되면 두 번째로 걸리면 촬영을 시켜요. 친한 친구가 있는데 제가 촬영을 했어요. 필름으로. 친구는 연출하고. 그때는 필름으로 처음 촬영해봤는데 로딩하고 촬영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될지 급하게 찍어야 되니까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가서 배우들이랑 똑같이 배우들 대신에 스텝이 서기도 하고 똑 같이 컷을 맞춰서 순서대로 맞춰서 이 컷이 맞냐 안 맞냐, 이 회의를 엄청나게 한다는 거죠. 그때 필름으로 처음 작업하면서 이게 엄청 신중한 거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Q.그런 제약 조건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거군요.

네. 디지털 촬영장도 많이 가보고, 필름 촬영장도 가봤는데 뭔가 집중력이나 이런 건 디지털보다 필름 촬영이 높았던 것 같아요. 필름은 소비해버리면 다시 찍을 수 없다는 걸 다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텝들, 배우들 모두 집중하고 실수 할까봐 긴장하고. 편하게 해서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집중도가 너무나 좋았던 것 같아요. 이런 제약 자체가 모두 사람이 집중하게 만들고 더 좋은 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능시험 때 준비를 많이 해가잖아요. 하루에 다 보여주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해가서 하루에 보여줘야 하는데 책임을 전가하지 않게 돼요. 디지털은 가서 하지 뭐 이렇게 찍기도 하는데. 필름은 그런 걸 줄이기 위해서 더 준비를 많이하게되지 않았나.

 

촉법소년 촬영 현장 컷

 

Q.촉법소년이 몇 번째 찍은 필름 영화인가요?

필름으로 찍은 건 4번째. 1분짜리 찍고, 4분짜리 찍고, 그 다음에 7분짜리 찍고 촉법소년이 26분이죠. 그러면세 제가 찍을 수 있는 필름양을 계산했어요. 나는 어느 정도에 OK를 내리는 사람이구나, 비율을 계산했는데 (촉법소년 촬영은) 완전 비율이 빗나갔어요. 말도 안되게 빗나가 버렸어요. 계산이 완전히 틀렸어요. 어린애랑 할아버지랑 하니까 제가 생각했던 거랑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기존의 배우와는. OK를 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필름을 더 많이 쓰지 않았나 생각해요.

Q.6개월 간 프리단계를 거치셨다고 들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연습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1차 오디션을 보고, 서울에서 다시 오디션을 열어서 캐스팅을 하고. 학교 졸업하기 전에 캐스팅을 해버렸어요. 다음해(2015년) 4월에 찍어야 되는데 9월에 캐스팅해버려서 9월부터 계속 한 달에 두 번씩 만나기 시작했죠. 처음에 학교에서 하면 어머니들이 학교로 오기만 하면 되니까 공간이야 빌릴 수가 있지만, 2월이 넘어 졸업을 하고 나니까 연습할 공간이 없어진거에요. 그래서 공간이 없어 헤매다가 졸업한 선배가 한예종 대학원에 가서 영화를 하고 있는 기간이라 연습실을 두 개를 잡아서 하나는 네가 써라 해서 한예종으로 가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스텝 회의도 거기서 하고. 3월부터는 한예종 영상원에 가서 배우들과 연습을 한 거죠. 그때부터는 이제 4월까지 준비를 해서 4월에 촬영을 한 거죠.

Q.촉법소년을 통해 가장 성취했다고 느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나리오를 쓸 때는 이 영화를 찍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시나리오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썼고요. 막상 제작지원을 받게 되니 내가 정말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냐는 거에 대한 확신이 정말 없었어요. 0%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서울에서 대학생 이야기 찍으면 주위 자취방 구해서 찍으면 되는데, 이거는 서울에서 모든 스텝들이 제작 기간을 가지고 찍고 올라와야되는 스케줄을 짜야되는데 전문적인 PD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제작을 하고 후배가 진행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내가 과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해놓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데려가야되는데 이런 로케이션 섭외라든지 제가 섭외해놓고 후배한테 연락처를 넘겨줘서 관리해라는 입장인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가에 대해서 프리프러덕션을 진행하면서 한달, 두달 가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조금조금씩 진행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연습도 필요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제가 이 영화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지만 모든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지 이 영화를 찍을 수 다고 생각했어요. 필름으로 찍는 것이라 더 큰 부담감이 왔어요. 이거는 찍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했지만, 이런 준비과정이 없었으면 영화를 찍지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럼에도 지방 로케이션과 아이와 할아버지 주연에 필름이라는 악조건에서 이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것에서 가장 성취감이 들고요.

Q.반면 숙제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있는지요.

영화를 찍으면서, 이 영화를 완성하면서 가장 숙제라고 생각했던 게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 때가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것 같아요. 콘티를 그리고 준비를 해서 ‘이거 맞아’해서 찍었는데, 촬영감독님이 이거 하나 더 찍어 놓는 게 좋지 않아해서 아뇨 필요 없어요하고 이것만 찍을 거에요. 필름 없어요하고 찍었는데 나중에 보면 그 걸 찍었어야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 씬에 대한 계산도 롱테이크 씬의 시간을 줄이려고 했는데 연기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런 시간을 지키지 못한 부분도 많았어요. 그런 점들이 너무 아쉽게 다가와요. 편집도 제가 안 하고 현명한 편집자를 만났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약간 모든 게 아쉽긴 해요. 지금은 조금 더 씬의 구성이라든지 이야기의 구성이라든지, 캐릭터의 감정에 대한 구성이라든지 이런 걸 조금 더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감정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인물에 대해서 약간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다면 캐릭터의 감정이라든지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킬 수 있는 그런 점을 보완해서 찍고 싶어요.

Q.영화에 키치적인 장면은 일부러 집어 넣으셨나요?

네.약간 저는 영화는 엄청 진지하게 찍었어요. 진지하게 찍은 게 뭐냐면 대부분 단편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진지하게 다루려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건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조금 더 가볍고 누구나 쉽게 영화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콘셉트가 어린 아이와 범죄자 할아버지의 맞대결이다, 둘의 대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되면 어린애처럼 돌아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두 어린이의 대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키치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던 것 같아요. 그걸 약간 넣으면서 지루하지 않고 관객의 생각과 타이밍을 한 번씩 뺏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이 정도까지 생각하면 나는 한 번 더 가서 보여줘야겠다. 한 번 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 요소를 넣지 않았나 생각해요.

Q.한 컷 한 컷 많이 고민하신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할 때 점을 하나 찍어도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도 하는데, 컷바이컷 계산이 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비어 있는 인서트를 잘 찍지 않아요. 해 하나 찍어, 간판 하나 찍어 인서트 찍어줄까 그래요. 나무 흔들리는 거 하나 찍어줄까 그래요. 저는 찍지 말아줘요.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해요. 정말 그런 요소가 다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인서트는 불필요하고 연결의 의미 밖에 없지 않냐. 그게 정말 어떤 영화적인 요소가 있길래 넣어야 되냐. 저는 왠만하면 그런 인서트를 안 넣으려고 해요. 제 영화를 보면 신파적인 건 있어요. 할아버지가 하는 대사 중에 할머니가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하니까 하지 말라고 해요. 왜냐고 물으니까 나처럼 될 수도 있다고, 신창원이 교도소에서 쓴 책에 보면 나같은 악마가 될 수 있다. 내가 어릴 때 나를 떼리지 않고 제대로 지도해줄 선생님만 있었다면 나같은 악마가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말해서 저는 할아버지 캐릭터를 과거에 신창원이었던 할아버지로 잡았어요. 그래서 경찰이 와서 표지판을 들면 ‘신창원’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렇게 신파적인 대사를 하지만 할머니가 그걸 깨버려요. ‘지랄하고있네’ 할아버지가 노려보면 할머니는 ‘저기 닭이 왜 우냐고.’하며 능청스럽게 그 장면을 넘겨버려요. 그게 뭐냐면 단편영화나 영화에 신파적인 요소가 들어가는데 그 장면들은 ‘나처럼 악마가 태어날 수도 있어’라고 끝맺어버리는데 저는 그게 싫어서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 번 더 그 장면을 그 장편을 넣고 싶었어요. 관객이 어느 정도 생각한 것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그런 장면을 넣게 됐어요.

 

촉법소년 촬영 현장 컷

 

Q.필름으로 지방에서 로케이션까지 진행해서 제작비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일반 디지털 단편에 비해.

제작비를 계산했는데 1,300~1,400 나오겠더라고요. 인건비 포함 안 시키고. 제가 다 도와줬던 사람들을 다 불러서 촬영을 했죠. 예산이 부족했는데 콘티를 그리려고 밤을 샜어요. 모 종편에서 하는 영상제가 있었어요. 거기서 1등에서 8등까지 상금을 줬어요. 1등은 많이 줬는데 나머지는 조금씩 줬어요. 영화를 학교에서 출품 공고가 올라와서 올렸어요. 예선에서는 1차에 통과가 됐어요. 올리고 이제 이거되면 100만원 받아서 내가 교촌치킨을 쏘겠다, 교촌치킨을 쏠테니 조금만 참고 견뎌라. 그래서 밤을 꼬박 새서 콘티를 그렸어요. 촬영 감독님도. 거의 전날 8시에 만나서 아침 6시까지 그렸어요. 스텝들도 몽롱한 상태에서 아침은 김밥집에 갔죠. 김밥이랑 우동을 먹었는데 조연출 했던 선배가 확인해보자 그랬는데 그걸 해서 100만 원 되면 치킨 먹으러 바로 가는 겁니다, 전 신경도 안 썼어요. 설마 내가 되겠냐 이랬는데 1등이라는 거예요. 천 만원 됐다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는데 보니까 진짜 1등인 거예요. 그때부터 제작비가 해도 남겠구나, 여유롭게 갔죠. 술이나 한 잔 먹자 그래서 여유롭게 술 마시고 그랬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배우와 트러블이 생길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죠.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촬영을 하러 갔는데 트러블 때문에 재촬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제작비가 더 들었죠.

Q.총 2,600만원 정도 들었다는 것 중에서 2,000만 원 지원받았다고 하신 게 이거군요. 영진위 800하고, 장비렌탈업체 200 현물지원, 영화제 상금 1,000만원. 1,000만원은 지원받았다기보다는 사비로 볼 수 있겠네요. 배우와의 트러블 때문에 제작비가 거의 2배 정도 더 들어가게 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배우와의 트러블 때문에 바뀐 게 있나요?

원로배우시고, 제가 영화에서 좋게 봤어요. 재미있더라고요. 그 사람 캐릭터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 사람을 섭외하러 가서도 제 할아버지 만난다는 생각으로 잘해드렸어요. 전 작품을 찍으면서 사람을 이용해서 이것만 뽑고 이런 생각보다는 진심으로 그 사람과 작업을 하고 잘해주고 싶고 뭔가 같이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지 않냐는 생각에 선생님께 연락도 자주 드렸어요. 선생님 자주 찾아 가서 만나고 그랬어요. 신뢰가 먼저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었는데 촬영 가기 전날 PD를 술 먹이고 돈을 먼저 받았다고 하는데 하는 말이 대학생은 책임감이 없어서 못 믿는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안 주면 안 가겠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까지 그 사람에게 신뢰를 얻으려고 했는데, 믿음을 주면 믿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사람도 많은 곳에서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아무리 진심으로 한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제 자신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지금은 만약 연로 배우들이 할 일이 있으면 딱 그냥 정당한 금액 주고 그 금액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하고 끝난다, 이 정도로 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영화를 몇년했는데, 네가 뭔데, 배우가 현장에 오면 감정이 바뀌는데 이러셔서 저는 선생님 그러면 6개월 동안 연습을 왜 했습니까, 필름이라서 제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제가 촬영 전에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해버리시면 영화에 감독이 왜 필요합니까. 선배인 연기자만 필요한 거 아닙니까하고 말했어요. 신뢰도 무너졌고 다 무너졌어요. 선배님한테 물었어요. 다른 현장에서 선배님 마음대로 해서 잘 된 경우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저는 연출된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서 간 거 아닙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하실거면 감독이 왜 필요합니까.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감독이 아닙니까. 연출하는 사람 아닙니까. 아무말도 안 하시더라고요. 소주 한 잔 마시고 풀자고 하시더라고요.

Q.가방이 옥자네요.

네. 옥자에 스태프로 참여했을 때 받았어요. 로케이션 어시스턴트라고 해서 로케이션 진행 보조 그런 거죠. 제작부의 개념이고요. 현장 진행하고 그런 팀에 있었어요.

Q.<촉법소년>에서 시간축을 뒤틀어 놓은 게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의 극 영화에서 현실성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의 모방이나 완전한 재현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시는거잖아요. 영화에서 현실성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어요. 보통은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서 역사적 고증을 거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 영화에서는 그게 엄청 중요했어요. <사무라이의 고백>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사무라이의 대결이었어요. 1800년도 후반에서 1900년도 초반으로 콘셉트를 잡고 일본어로 다 연기를 했어요. 전세계에서 최후의 두 사무라이가 남아서 좌웅을 겨루는 그런 이야기에요. 둘 다 최고라고 하는데 둘 다 엄청 친한 친구에요. 그런데 자웅을 겨뤄야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그때는 시대적 디테일을 많이 살리려고 옷 같은 것도 많이 찾아보고 사무라이 영화 정말 많이 찾아보고 칼이나 옷도 사무라이 하시는 분한테 가서 빌리고 만들고 그랬어요. 한국에 사무라이 유학을 갔다오신 분이 있더라고요. 사무라이 전공하신 분이 있어요. 완전 사무라이 오타쿠예요. 집에 가면 온통 사무라이 물품으로 가득차 있어요. 엄청 넓은 집에. 그 분 집에 가서 저희 다 무릎 꿇고 깔 빼는 법이랑 사무라이 공격하는 법이랑배웠어요. 사무라이는 야비하게 싸운다며 제가 시나리오 쓴 게 틀렸다고. 사무라이는 야비하게 싸웠다며, 모래 던지고 막. 모래는 이렇게 던지라고, 아래에서 위로 던져야 눈에 들어 간다고 설명해주시고. 정말 오타쿠 같은 분이 계세요. 그 분한테까지 찾아가서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어요. 이 영화(촉법소년)는 제가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1995년도에서 1998년도의 이야기를 써보자, 이렇게 해서 처음에 만들었어요. 저는 그거를 만들려면 로케이션 제약이 너무 많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청사포라는 지역이 제가 어렸을 때 갔을 때나 제가 영화를 찍었을 때나 별반 발전된 게 없었어요. 비슷했어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제가 어렸을 때랑 비슷하다. 어렸을 때 찍었던 사진과 비교하면서 비슷한 것 같다. 이러면서 작업을 먼저 접근했어요. 그런데 그 속에 최고의 범죄자를 한 명 넣어보자. 저기 슈퍼에 일하는 사람이 신창원 같은 범죄자가 늙어서 슈퍼를 한다. 외지에 와서. 그런데 이 동네 아이들이 그 사람이 범죄자인지 모르고 가서 가짜 돈을 교환하기 시작한다는 콘셉트로 진행했어요. 영화 미술을 담당하는 친구에게도 올드한 느낌의 소품을 많이 준비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준비를 해보니까 소품은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나는데 로케이션이랑 그 학교랑 이런 게 그런 느낌은 나지 않더라고요. 청사포에서 찍어도 해운대의 높은 빌딩이 걸리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도 해운대가 많이 발전해서 높은 건물이 많이 지워졌었거든요. 그래서 이 정도면 되겠다고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됐던게 바보가 입고 있는 ‘레드 데빌’ 옷이었어요. 저것만 아니면 98년도 맞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우가 ‘레드 데빌’ 옷을 가지고 온 거에요. 엄마가 매일 호주머니 옆에 준 쌀 과자를 차고 다니고 매일 노니까 엄마가 마음이 아파서 항상 과자를 채워준다는 캐릭터를 잡아 왔더라고요. 바보의 엄마가 허리끈에 채워준다. 제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데 너무 웃긴거에요. 꺼내서 쌀 과자를 막 먹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콘셉트가 이렇다. 그래서 ‘레드 데빌’ 옷이 연도상 맞지 않는다. 이게 너무 2002년의 상징물이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어요. 많은 스텝들이 모여있고, 이 사람들에게 요거준비해 요거준비해라고 자기가 원하는 걸 틀에 맞춰서 준비를 시키는데 너무 자기틀에 사람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게 아닌가 했어요. 대부분의 연출자가 그랬어요. 백프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저는 공동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이 사람들에게 제가 시나리오와 제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사람들이 준비하는 게 제 거에 맞게 최대한 유도를 한다고 생각했지 제가 그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시켜버리면 이건 돈 주고 강압적으로 시키면 되지만 같이 만들어 가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일방적인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제 색깔과 맞지는 않지만 때로는 그거를 서로 어느 정도 맞춰가면서 영화를 만들어 가고 싶었어요.

Q.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오게 된 거군요.

네. 콘셉트가 틀어졌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중요하지가 않았어요. 그 사람의 의견이 어떻게 보면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영화의 배경이나 이런 모든 부분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콘셉트 자체도 신창원의 미래였기 때문에 저는 엄청 리얼리즘이 섞여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지만 관객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착각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로 더 집중을 시키는 것이지, 미쟝센으로 그러는 건 많이 엮여 있지만 부가적인 거라 생각했어요.

Q.슈퍼마켓 할아버지가 뛰는 장면 있잖아요. 그런 공간에 대한 것도 애초에 없었던 거네요. 뛰는 장면에서 시간축이 많이 틀어지잖아요.

시나리오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로키 음악이 나오고 할아버지가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저는 집 앞에서 콩을 막 만지는 그런 걸 생각했는데 촬영감독님이 보시면서 이 장면을 로키씬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게 로키씬 등장인 줄 알았다. 로키 영화처럼 찍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렇게 준비를 했던 거에요. 어차피 과거로 이 사람은 과거로 뛰어가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환상같은 씬이었기 때문에 시간과 로케이션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 영화가 부산 사람만 보는 것도 아니어서 어차피 문제가 없다. 어차피 영화 다 다른 지역에서 찍지 않냐, 이런 게 의미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제 제가 가장 해운대에서 로키 영화를 가장 비슷한 장면들을 팔로잉할 수 있는 장면들, 뛰고 배경이 보여지고, 주위 사람이 보여지는 장면을 찍기 시작한 거에요. 록키가 시애틀에서 준비할 때 시장을 뛰어가면 사람들이 옆에서 응원하고 음료수 던져주고 하는 장면을 해운대 시장을 뛰어가고 그 할아버지는 해운대 바닷가를 뛰고 록키는 맨 마지막에 시애틀에 있는 광장에 올라가서 자기가 이기겠다고 손짓하는데 부산에서는 그런 광장이 없어서 저는 민주화공원이런 곳을 많이 생각했는데, 영화의 전당 야외가 곧 나의 시애틀이 아니냐. 영화의 전당에서 최고가 되겠다, 제가 처음에 그 장면을 넣은 이유가 뭐냐면 영화의 전당에서 이 영화를 틀겠다 그래서 그 장면을 꼭 찍어야 겠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이제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이라는 콘셉트로 영화를 찍었어요. 영화에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의 목표점이 약간씩 나오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의 전당도 나오고, 제 생각과 비슷하게 아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목표점들을 캐릭터와 조금씩 엮기 시작했었던 것 같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작업을 하면서 제 영화를 제대로 본 사람이 한 명은 지인인데 시를 쓰는 여자친군데 영화를 보고 “오빠 이 영화 잘 봤다. 그런데 너무 슬펐다.”그러더라고요. 저는 마지막에 엄청 약간 씁쓸했거든요. 씁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엄청 잘 보고 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엄청 재미있게 만들었다, 자기를 쥐락펴락했다, 내 마음을 막 쥐락펴락했다, 내 타이밍을 뺏었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도 내가 의도한대로 그대로 본 사람이구나. 많은 사람은 아니어도 몇몇 분은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정말 나보다 잘 보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촉법소년 촬영 현장 컷

 

Q.영화는 감독예술이라고 하잖아요. 감독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진행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 자기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감독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같이 하면서 확장되고 배워가고, 그런 부분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걸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알아가도록 강압적이지 않게 유도를 해서 그 사람들의 생각이 이게 맞겠구나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지금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게 다른 사람과 같이 작업하는 기술이라고도 생각해요. 그 기술을 배우는게 연출자지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Q.다음 작품은 또 장르물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쓴 게 몇 개 있는데 요즘 쓰고 있는 건 군대이야기에요. 안타까운 군대현실에 대한 이야기인데, 군대영화가 워낙 잘 만들어진 영화가 많은데 저는 또 다른 부분에 대해서 악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Q.마지막으로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촉법소년>의 경우 글을 쓰면서도 많이 고민했지만 기회라고 항상 말하는데요. 누구에게나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이한테도 기회를 줘야겠지만 할아버지한테도 생각할 기회를 주면 좋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한테 기회를 주면 또 다르게 변할 수 있지않을까에 대해서 엄청 많이 고민하고, 관객도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기회를 주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Q.감독님의 다음 장편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회’를 담을지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김민재